시장이 눈앞에 있다. 아니, 우리는 시장을 눈으로 본다. 자극적인 썸네일, 색감이 강조된 광고, 선명한 차트, 가려진 세일 가격, 환율 계산기 속 숫자까지. 소비자는 이제 가격보다 이미지와 시선의 흐름에 반응하며 경제적 선택을 한다. ‘눈’은 감각기관을 넘어 경제 주체가 되었고, ‘보이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가 되었다.
감시 자본주의는 이 지점을 가장 첨예하게 드러낸다. 디지털 플랫폼은 사용자의 시선 데이터를 측정해 광고를 배치하고, 알고리즘은 ‘눈길을 끄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작동한다. 우리의 눈이 머문 시간이 곧 매출과 광고 단가로 환산되는 구조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에 플랫폼은 ‘보게 만들기’ 위해 작동하고, 사용자는 ‘선택했다’고 착각한다.
경제 분석가나 투자자의 ‘눈’ 역시 훈련되어 있다. 주가 그래프와 재무제표를 읽는 ‘차트 읽는 눈’은 직관과 분석의 교차점이다. 그러나 인간의 눈은 항상 정확하지 않다. 기술적 분석의 패턴은 착시로 이어지기 쉽고, 시각 중심의 해석은 종종 정량 데이터를 왜곡한다. 인공지능은 이를 보완하지만, 인간의 감정적 시선은 여전히 금융 시장의 ‘비이성’을 이끄는 변수다.
이와 달리 소비 시장은 점점 더 ‘보이는 것’ 중심의 경제로 재편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은 썸네일과 패키지 디자인에 따라 구매율이 결정되며, 명품은 브랜드 로고와 외형적 상징성만으로 수백만 원의 가치를 부여받는다. 가시성 그 자체가 프리미엄이 되는 시대, 눈에 띄는 것이 곧 팔리는 구조가 정착되었다.
문제는 이 구조가 노동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서비스직은 ‘시선을 감내하는 노동’이 된다. 고객의 시선을 맞추며 미소를 유지하고, 외모와 복장이 평가 기준이 되는 현실은 감정노동을 넘어서 외모 경제학이라는 또 다른 층위로 이어진다. ‘보이는 노동’은 그만큼의 수당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지친다.
우리의 화폐조차 ‘시각적 기호’다. 지폐와 동전 속 인물과 문양은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국가가 지정한 ‘보이는 가치’이며, 그 선택에는 정치적, 문화적 의도가 스며들어 있다. 돈의 얼굴은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소비할지에 대한 국가적 메시지다.
기술도 ‘눈’을 경제화한다. 디지털 아이트래킹 기술은 소비자의 시선 흐름을 분석해 매장 배치, 광고 위치, 웹사이트 UX까지 조정한다. 사용자의 눈동자가 가장 오래 머무는 지점은 제품의 위치로 결정되고, 광고주들은 그 좌표에 돈을 지불한다. 시선의 움직임이 물리적 경제 흐름을 바꾸는 시대다.
그렇다면 이 모든 시각 중심 경제는 얼마나 ‘진실한가’? 우리는 때때로 ‘눈속임’에 기꺼이 속는다. 반짝이는 포장, 할인 전후 비교표, 심리적 가격 마케팅은 실제보다 더 이익을 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경제는 수학적이지만, 소비는 심리적이다. 그리고 심리를 가장 먼저 자극하는 건 눈이다.
이 모든 흐름은 우리가 경제를 ‘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는 것이 선택을 만들고, 시선이 권력이 되며, 이미지가 가치로 전환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장 빠르게 반응하는 감각은 청각도, 촉각도 아닌 시각이다.
우리는 가격표보다 포장을 먼저 보고, 데이터보다 차트를 먼저 믿는다. 눈은 이제 경제 주체이고, ‘보이는 것’은 실제보다 먼저 소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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